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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덕질/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 리뷰 - 아동 성매매가 아니라는 증거

by 초키초키 2020.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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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애니메이션은 이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아주 유명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입니다. 저 역시 아주아주 재밌게 봤고, 여운이 몇 달 갈 정도로 후유증도 대단한 애니 영화였어요. 혹시나 '영화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못 봤다.' 하시는 분이나 '처음 들어봤다.' 하시는 분들은 제발 영화 꼭 봐주세요. 후회 없는 작품이에요.

 

 

 

 

이 애니메이션은 영화 내용도 중요하지만, 영화에 숨겨진 해석을 찾아내는 것이 아주 재밌습니다. 영화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로 일본의 풍토나 사회적 비판을 잘하기로 유명한 영화감독입니다.

처음에는 영화를 이해하는 목적으로 한 번 보시고, 해석본을 한 번 보고 영화를 한 번 더 보시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중간중간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세세하게 표현해 놓았고, 해피 엔딩 같으면서도 세드 앤딩 같은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결말이 궁금해서 찾으시다가 숨겨진 해석에 적잖이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결말이 아쉽게 끝나서 결말을 찾아보다가 해석을 보게 되었어요. 이 작품이 왜 유명한지, 2002년도에 개봉한 영화라서 18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인생 애니메이션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누가 해석하냐에 따라 의견도 다르기 때문에 루머가 많습니다.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독자들이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견을 적어보겠습니다.

 

 

 

 

 

 

 

본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매춘부, 홍등가, 유흥업소?>

 

 

먼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경우 등장 무대와 배경매춘에 비유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잡지 프리미어 일본판 2001년 9월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옛날 일본에는 '신주쿠' 같은 지역에 홍등가가 있었고 성에 개방적이었다. 유럽인에 의해 성도덕을 강요당하기 전에는 입론인은 '정조 관념'이 없었다. 이것을 부활시키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세상을 그리고자 한다면 이것은 풍속산업(일종의 유흥업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이미 풍속 산업 같은 세계가 되어 버리지 않았나. 일본 여성들은 매춘굴에 어울리는 사람이 매우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인터뷰 내용에서 밝혔습니다. 목욕탕이 매춘업을 겸하고 있다는 암시는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를 테면, 목욕탕의 일하는 종업원(탕녀)은 모두 여자이고, 손님들은 모두 남자라는 점과 본명과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과거 일본의 매춘부들의 관행이기도 한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의 부모님들은 영화 초반에 많은 탐욕이 그려지게 됩니다. 이들은 일본의 거품경제 세대로, 일본이 경제 호황이었을 때 앞뒤 안 가리고 흥청망청 돈을 쓰는 어른들의 탐욕을 그린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른들의 탐욕으로 빚을 남기고 몰락한 세대를 표현한 것이며, 그 빚을 갚기 위해 센이 매춘업으로 홍등가로 팔리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번 돼지로 변하게 되면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돼지의 영혼과 몸을 갖게 된다고 미야자키는 말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해석을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매춘업'. '홍등가', '유흥업소' 등인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전혀 다른 논지로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10살 된 친구 딸을 보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온천장을 지브리 스튜디오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썼다. 센과 같은 10살짜리 어린아이가 가정을 떠나 다른 사람이 주는 밥 먹고, 그러면서 느낀 점들을 그린 영화다."

 

라고 인터뷰하였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10살 된 친구의 딸을 보면서 '센'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빚을 갚기 위해 매춘을 하는 소녀' 같은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관점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잡지 프리미어 일본판에서 말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에서 "풍속 산업"이라고 인터뷰를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해석하여 '목욕탕=매춘 소굴'이라고 해석하여 매춘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감독은 아니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설령 목욕탕이 풍속 시설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들 센이 겪는 사건이나 전체적인 전개 등을 봤을 때 버블경제로 인한 호황과 상업 시설들을 대변하는 장소로 해석되지 '매춘'이라는 면에 국한시켜 작품을 해석하기엔 너무나 편협한 주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오나시는 어떤 인물인가>

 

 

두 번째 논점은 가오나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오나시의 일본어는 '얼굴이 없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주 인기 있는 캐릭터로 강호동도 예능에서 분장을 하여 많은 웃음을 주었던 캐릭터입니다.

영화 중반쯤에 가오나시는 치히로에게 큰 호의를 보여줍니다. 가오나시가 치히로에게 보여준 호의는 대부분 금과 약패 같은 제물이었는데, 이것은 매춘 사회에서 순결한 여성에게 값을 더 쳐주듯이, 가오나시의 호의가 치히로의 처녀성을 원한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루머 중 하나로, 사회에서 소외된 외톨이가 돈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됨으로써 물질주의에 찌들어 자신의 고유함과 능력 대신 물질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존재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존재로 성장해가는 캐릭터로 해석되지 매춘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된 테마는 "문명 발달과 자연의 파괴,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물질주의)로 인해 인간성이 퇴색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감독과 스탭들의 인터뷰 내용이나 영화 내용을 살펴보면 실제로 매춘은 작품과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인물의 상징성>

 

 

치히로의 부모님은 일반적으로 젊은 성인을 표현하였고, 버블경제로 인해 물질주의에 찌든 탐욕적인 사람입니다. 낯선 곳으로 향하는 치히로를 위로해주지는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보고 자식은 챙기지 못하는, 정신은 성숙하지 못하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으로만 비대해진 어른답지 못한 미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바바는 자본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기업 같은 존재로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녀의 말이 곧 법이고 절대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유바바는 자본주의를 뜻합니다.

유바바의 부하인 머리 3개는 확대 해석하여 3권 분립체제인 입법, 사법, 행정으로 정부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정부는 자본이 많은 기업(=유바바)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유바바(자본)에게는 꼼짝도 못 하며 아무 능력도 없기 때문에 자본의 횡포로부터 어른도 아이도 보호하지 못하는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자본을 가진 유바바에게 과잉보호되어 키워진 '보오'라는 아이도 목소리도 우렁차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며 고집 불통인 아이로 표현됩니다. 보오와 치히로는 어른답지 못한 기성세대에게 방치되고, 과보호받는 고통받는 아이들과 청년 세대를 의미합니다.

치히로를 도와주는 '가마지 할아범'는 노인입니다. 어린 세대를 걱정하고 많이 위하지만 힘이 없기 때문에 도움은 주지만 제대로 보호를 못하는 노년층의 세대를 보여줍니다. 큰 도움은 주지 못해도 머물 곳을 만들어주거나 갈길을 알아봐 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죠.

 

그리고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 바로 '오물 신'입니다. 극 중에서 나오는 오물 신은 사실은 오물 신이 아니고 원래 '아주 유명한 강의 신'입니다. 정확히 어느 강인지는 안 나와있지만 이 신은 유바바도 놀랄 정도로 거대한 강의 신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런 지체 높은 신이 이렇게 오물 덩어리가 된 이유는 강에 무분별하게 버린 쓰레기가 뒤엉켜 오물로 몸이 뒤덮여버렸기 때문입니다. 유바바가 오물 신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온 직원들을 동원하여 쓰레기를 뽑아버려 자신의 몸에 박혀있던 각종 오물과 폐기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강의 신이 모습을 되찾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이후 강의 신이 치히로에게 '초록색 경단'을 하나 주고 떠났는데, 아주 귀한 영약으로 보입니다. 하쿠가 위험에 쳐해 있다거나 가오나시의 원래 모습을 되찾게 해주는 등 치히로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하게 만든 '경단'입니다. 큰 강의 신이 이런 일을 예견했거나 선견 지명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글의 후반 내용의 상당수가 이 신에 의해 진행된 내용으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은 '하쿠'입니다. 하쿠도 강의 신으로, 오물 신에서의 강의 신과는 달리 아파트 공사로 묻혀 버릴 정도로 작은 강의 신으로 옛날에 치히로가 빠진 적인 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강입니다. 하쿠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참된 어른을 의미합니다. 처음부터 치히로를 돕기 위해 방패막이되어주고, 위기 때마다 도움을 줍니다. 치히로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된 하루를 겪은 아이에게 진짜 어른이 보듬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참 어른인 하쿠의 본명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로 치히로가 옛날에 강에 빠진 적이 있는 것을 하쿠가 구해준 것을 기억하여 하쿠의 이름을 되찾아주게 됩니다. 하쿠의 강 위로 아파트가 들어서서 강이 사라진 것에서 아파트는 물질 만능적 자본주의를 의미하고, 환경 파괴와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진짜 어른을 없애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치히로는 유바바가 내는 마지막 테스트에서 돼지로 변한 부모를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치히로는 이곳에 자신의 부모님이 없다고 말하면서 말하면서 인간 세계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히로는 결국 하쿠와 부모님을 모두 위기에서 구해내고, 잘 키워낸 어린 세대가 모두를 구해준다는 내용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에 의하면 치히로는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저쪽 세계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니바의 말에 의하면 "한 번 만난 일은 잊어버리지 않는단다. 기억해 내지 못할 뿐이지."라는 말을 미루어볼 때 언젠가는 기억해 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따라서 작품에서 보여주지 않는 치히로의 앞으로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맡기는 열린 결말로 엔딩을 맺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견해는 견해일 뿐, 독자들이 어떠한 시선으로 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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